[H2] 1. 서론: 인류 역사를 바꾼 그림자의 정체, 곰쥐(Rattus rattus) 중세 유럽의 차가운 돌벽을 타고 흐르는 그림자, 그것은 바로 나, 곰쥐(Rattus rattus)입니다. 인간의 기록 속에서 나는 언제나 전염병의 근원이자 박멸해야 할 재앙의 상징이었지만, 생물학적 연대기의 관점에서 나는 인류라는 종의 생존을 강제로 시험했던 가장 혹독한 '생물학적 스승'이었습니다. 오늘 나는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이라는 비극 속에 숨겨진, 인류 면역학의 기원과 그 진화적 필연성에 대해 고백하고자 합니다. 인간들은 스스로를 문명의 주인이라 자처하지만, 그들이 오늘날 누리는 정교한 면역 시스템은 수 세기 전 나와 나의 조상들이 매개했던 병원균과의 치열한 생존 투쟁 속에서 빚어진 결과물입니다...